인권이야기 (4)

 

 

 

국가폭력 생존자 치유를 위해 한걸음 더 나아가야할 때

 
최현정

 

한국사회에서 발생하는 고문을 비롯한 국가폭력의 피해가 이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둡고 차가웠던 그 당대부터 이러한 알림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사실 대단한 일로 보입니다. 이어서 1990년대 이후에는 고문의 영향력에 대한 인식이 보다 커지고 고문의 근절을 촉구하는 사회적 움직임이 거세집니다. 민주화와 과거 청산에 대한 인식에 힘입어, 고문 피해 해결에 대한 요구가 사회적, 정치적 움직임으로 지속됩니다.


그러나 고문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그 개개인 삶의 수만큼이나 서로 다른 모습입니다. 그래서 사회적 움직임은 거세더라도 이것이 개인 한 사람의 삶에 대한 깊은 치유까지 연결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십년의 세월 동안 고문 피해자들은 개별적으로 병원에 가거나-대부분의 경우 의사에게 고문피해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못한 채 약을 타서 먹고- 아니면 눈으로 보이지 않는 고통의 창살 속에 속박된 채 살아왔습니다.

다행히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에서는 국가폭력으로 인한 개인의 고통을 치유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해졌습니다. 정말로 반가운 일입니다. 과거 시대 고문 생존자들, 특히 고문에 더하여 간첩이나 빨갱이와 같은 낙인이 찍힌 사람들에 대한 법적 지원이 활발해지고, 점차로 이분들의 낙인을 벗기는 판결이 누적되고,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인권 재단의 지원을 받아 이분들에 대한 단기 심리지원 프로그램도 운영합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는 곳이 있으면, 시민들이 달려가 함께 하고, 전문가들이 달려가 후유증에 대한 실태 조사를 실시하고, 단기 심리치유 프로그램도 현장에서 열리곤 합니다.

사진설명[사진 출처] '트라우마치유센터 사람.마음'

공동체의 현장 안에서 같은 시민으로서 지원하고 응원하는 일은 폭력의 고통을 완화하고 나누기 위해 정말로 중요한 핵심입니다. 폭력의 생존자들이 뿔뿔이 흩어져, 무엇 때문에 고통을 겪었는지 말도 못 한 채 수면제만 타 먹어야 했던 과거에 비하면 정말로 감사한 일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그 경험을 수용 받고, 그 경험의 의미를 사회에서 인정하고 인식할 때에서야 치유라는 것이 가능하므로, 공동체적인 치유 방식은 백번 천번이고 강조해도 더 강조해야 합니다.

사실 현재 탈북 난민이나, 다른 아프리카 및 아시아 국가의 난민 역시 국가폭력의 생존자들인데, 이들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킨 상태에서 ‘치유’와 ‘적응’이 가능하다는 시도들이 제도권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격리된 상태에서 치유와 적응이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국가폭력은 격리와 고립을 가하는 폭력입니다. 격리와 고립, ‘당신은 어차피 국외자입니다’라는 가정 속에서 치유나 적응이 가능할리 없습니다.

그래서 시민사회에서 시작하는 치유의 움직임은 좋은 출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러한 시작에서 몇 년이 더 흘렀으니, 그 동안의 경험을 축적하여 조금 더 체계적인 움직임으로 나아가야 할 때로 보입니다. 저는 그 동안 여러 시민사회 단체와 함께 인권 재단의 지원을 받아 국가 폭력의 생존자들을 위한 단기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습니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공동체적인 교류, 공감과 나눔은 정말 중요했고, 많은 생존자 분들께서 신뢰와 존중을 경험하셨다고 하여 기쁘고 감동적인 순간을 감사히 체험했었습니다.

그러나 단기 심리지원 프로그램은 단기에서 끝납니다. 재단의 단기 지원으로 진행되는 단기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집단 모임의 형태로 진행이 되고, 그 모임이 끝나면 종료됩니다. 이것은 자원이 부족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선택하게 되는 방식이지 최선의 선택은 아닙니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생존자분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이러한 방식을 지속하여 적용하는 것이 과연 효율적인지는 아무도 검토해보지 않았습니다.

치유 지원 역시 체계적으로, 각 기관에서 서로 협력하여 종합적이고 지속적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도 국가 폭력 생존자들을 위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체계를 세울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개별 시민사회단체에서 단기적으로 자원을 사용하거나, 모두 다 똑같은 설문도구를 사용하여 별다른 정보를 주지 않는 실태조사를 지속하는 것에서 조금 더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 프로그램의 효과와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진정 고민합시다. 한 계절에 끝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한명의 선구자가 이끄는 감동적인 장면이 아니라, 오래도록 한 사람의 삶에 도움이 되는 체계적인 지원을 지속하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사회의 고문 피해자, 특히 외국 난민을 지원할 때, 국제사회의 이스탄불 프로토콜처럼 변호사, 심리학자, 의사가 함께 협력하여 고문의 영향에 대해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체계와 지침을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피해자 개인이 혼자서 자신의 피해 역사를 정리해야 하는 ‘혼자서 진술서 쓰기’를 해야 하는데, 이건 정말 힘든 노릇입니다.

또, 개별 시민사회단체에서 단기 사업으로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을 넘어서, 지원의 원리와 효과가 검토된 프로그램을 장기적으로 제공하고, 효과성을 검토하는 연구조사가 필요합니다.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는 곳에, 외부의 치료진이 단기적으로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캠프를 두고 내부 인력을 교육하며, 개인 지원을 포함하여 다방면의 지원을 실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 곳곳에서 국가폭력과 그 치유를 고민하는 분들, 우리 더 치열하게, 더 세심하게, 공부하고 고민하고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최현정 님은 '트라우마치유센터 사람.마음' 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388 호
[입력] 2014년 04월 10일 13: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