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저널 일다에서 연재되고 있는 친족성폭력에 관한 글을 공유합니다

이 글이 많은 생존자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가해자는 싸이코패스도, 짐승도 아니다
‘친족성폭력’ 이야기② 보호자이면서 가해자인 아빠
<여성주의 저널 일다> 향심
※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기관 ‘열림터’(성폭력피해자 쉼터)의 활동가들이 ‘친족성폭력’ 생존자들과 만나온 경험을 토대로, 사회가 친족성폭력을 어떻게 바라보고 생존자의 삶을 이해하며 또 다른 범죄를 예방해가야 할지 모색해봅니다. [편집자 주]
 
아빠에 대한 자랑, 어떻게 봐야 할까
 
열림터에서 일하던 어느 날, 정희의 담임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정희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약 7년 동안 아빠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고, 친한 교회 언니의 도움으로 열림터에 오게 되었다. 당시 정희는 실업계 고등학생이라 전학이 매우 어려웠는데, 담임 선생님이 정희의 피해 사실을 알고 전학 허가가 날 수 있도록 애써주셨다. (실업계 등 사립학교의 경우, 성폭력 피해로 비밀전학을 할 때 교육청의 권유가 있어도 학교장이 거부하면 전학할 수 없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어렵게 전학한 학교인데, 혹시 학교 생활에 문제가 있나 싶었다.
 
그러나 담임 선생님이 걱정한 건, 학교 생활이 아닌 정희의 성폭력 후유증이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정희 아빠가 멋있다며 부러워하는 말을 듣고 이상해서 물어봤다고 한다. 정희가 친구들에게 자신의 아빠가 사회운동을 했었고 무척 용감하고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사람이라며, 자신이 글쓰기를 잘하는 것도 아빠의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라고 자랑했단다. 선생님은 정희가 아빠에 대해 좋게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심각한 피해 후유증이 아니냐고 물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열림터 생활인들이 모여 있을 때 이와 비슷한 일이 종종 생긴다. 누군가 정희처럼 가족 자랑을 시작하면, 너도나도 그럴듯한 경험을 말하기 시작한다. 나는 생활인들이 겪은 피해 내용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집에서 무슨 좋은 일이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생활인들은 아빠와 갔던 곳, 먹어본 음식, 아빠의 외모나 장점까지 쉬지 않고 말한다. 급기야 아빠에 대한 자랑은 아빠가 얼마나 자신을 잘 때렸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한 대 맞았더니 팔이 부러졌다는 웃지 못할 무용담으로 끝난다.
 
정희를 비롯한 열림터 생활인들의 가해자 자랑을 듣고 있자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하다. 이 생존자들은 오랫동안 아빠를 비롯한 다른 가족들의 심한 욕설과 폭력, 성폭력에 일상적으로 시달리다가 어렵게 집을 벗어났다. 쉼터에 와서 자기 치유와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만, 가해자는 자신의 행동을 부인하고 가족들은 여전히 생존자의 피해와 고통을 외면한다. 생존자들은 가해자와 가족들의 반응에 큰 상처를 받는다.
 
그럼에도 생존자가 보여주는 가족에 대한 태도는 생존자가 놓인 이런 상황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정희 담임 선생님의 걱정처럼 성폭력의 후유증일까, 아니면 흔히 말하는 가족/핏줄의 힘인 것일까.
 
보호자로부터 성적 요구를 받는다는 것
 
정희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빠가 처음으로 자신을 만졌다고 기억한다. 처음 추행했던 날, 아빠에게선 약간 술 냄새가 났지만 평소보다 심하지는 않았다. 아빠는 자신이 밖에서 힘든 일을 하는데 엄마가 아프니, 정희가 엄마를 대신해서 아빠를 기분 좋게 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다음부터 아빠가 집에 있는 날이면 항상 안방으로 불려가 성폭력을 당했다.
 
정희는 어린 나이였지만 아빠 행동이 이상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잠든 척, 아픈 척을 하거나 일부러 아픈 엄마 옆에서 잠을 잤다. 정희가 피하면 아빠는 정희가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그러는 것이라며 설득했다. 그런 말은 집에서 듣는 유일한 칭찬이었고 용돈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때로는 정희가 아빠한테 먼저 간 적도 있다.
 
하지만 정희가 아빠의 요구에 더 순순히 따르게 된 것은, 정희가 가지 않은 날 아빠가 엄마에게 화내는 것을 본 다음부터이다. 정희가 아빠 말을 듣지 않으면 엄마가 괴로워졌다. 정희는 아빠의 요구에 응하는 게 힘들었지만, 엄마가 사실을 알면 충격을 받아 더 아프게 될까 봐 말하지 못하고 살았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 엄마에게 털어놓았을 때, 엄마는 ‘너도 좋으니까 가만히 있었던 것 아니냐’며 정희를 비난했다.
 
정희의 아빠는 지역에서 부당한 사건을 해결하는 데 주도적인 일을 맡아, 동네에서 평판이 좋은 사람이다. 그러한 평판은 정기적인 직업이 없는 정희 아빠가 계속 돈을 벌 수 있게 해주었다. 아빠는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앞장서서 싸워야 하기 때문에, 힘들고 피곤해 보였다. 힘든 일을 잘 해내는 아빠 덕분에 가족의 수입이 생기고, 동네에서 아빠 딸이라고 말하면 모두 알아주는 것도 좋았다. 정희는 공부도 잘하지 못하고 특별히 예쁘지도 않은 자신을 사람들이 챙겨주는 것은 아빠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빠가 언제 성관계를 요구할지 모르기 때문에, 집에 가기 싫은 날도 많았다. 집에 있으면 아빠의 기분을 항상 살펴야 했다. 수학여행처럼 큰 돈 드는 일이 생기면, 돈을 탈 수 있게 평소보다 더 신경 써야 하는 것도 큰 스트레스였다. 우울하고 괴로운 마음에 가출도 생각했지만, 집을 나와서 어떻게 생계를 꾸리고 대학에 갈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대학에 들어가면 집을 나가 살 수 있으니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기로 했다.
 
딸이 성폭력 피해를 감내하는 이유
 
친족성폭력은 보통 피해자가 성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기 전에, 아빠가 딸에게 특별한 애정을 보이는 것처럼 시작된다. 물리적 폭력이 꼭 수반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피해자가 성적 접촉을 원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가족이 깨질 수 있다’고 협박한다. 그리고 엄마 대신 딸이 하는 자연스러운 역할이라는 메시지를 준다. 생존자들은 대개 아빠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지만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르고, 가해자의 행동이 반복되면서 자신이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무엇보다 가해자의 요구를 거절했을 때, 자신은 물론 다른 가족까지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가해자의 요구에 무작정 피하거나 저항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전략적으로 행동할 방법을 찾게 된다. 정희는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거나 아빠의 기분이 나쁠 때, 혹은 돈이 필요한 경우에, 아빠의 요구에 쉽게 응해주거나 애교를 부렸다. 학교 시험 기간이거나 생리 중일 때처럼 적당히 피할 수 있는 상황에선 ‘다음에 하자’고 미루는 협상도 하였다.
 
친족성폭력 생존자들이 가해자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할 때,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지킬 수 있는가만 고려하는 것은 아니다. 정희처럼 가해자의 현재 상황과 그의 역할, 감정, 가족의 유지, 자신의 미래와 학습, 생계 문제와 함께 섹슈얼리티를 고민하는 것이다.
 
이 때 자신의 섹슈얼리티보다 ‘가족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우선 순위가 될 경우가 많다. 정희는 아빠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 아빠의 일과 가족의 유지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유일하게 아빠의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있고, 엄마가 아파서 풀지 못하는 아빠의 성욕을 해소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가족 내에서 여성으로서, 딸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섹슈얼리티가 침해되는 상황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아빠와 협상을 벌이는 조건이 된다. 그리고 성폭력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 감내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된다.
 
물론, 모든 친족성폭력 피해자가 ‘가족이 유지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는 건 아니다. 이러한 특성은 일반적이라기보다는 열림터에 오는 생존자들의 특수한 조건으로 보인다. 가족이 경제적 능력이 있거나, 가족 이외에도 자신을 도와줄 인적 자원이 있는 경우에는, 이를 활용해 피해 상황에서 벗어나는 생존자들도 있다.
 
그러나 열림터에 오는 생존자는 가난한 계층이 많다. 빈곤층에서 친족성폭력이 많이 일어난다는 뜻이 아니라, 친족성폭력에 대응하는 양상이 계층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다. 열림터에 오는 생존자들이 유독 가족의 유지와 경제적 상황을 중요하게 고려하며 가해자와 협상하게 되는 것은, 당사자가 놓인 빈곤의 조건과 맞물려 있다. 가해자인 아빠와 엄마가 이혼을 하면 가족들이 먹고 살 수 없으며, 아빠를 처벌하게 되더라도 위자료나 배상을 받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성폭력 피해를 감내하더라도 가족을 유지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분노와 동정을 넘어 진실을 이해하려면
 
생존자들에게 ‘가족’ 혹은 ‘가해자’는 그 가족이 어떤 사회적 조건 속에서 구성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사회적 장에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는가에 따라 변화한다. 장점을 물려준 아빠, 멋진 가장, 강제로 성관계를 요구하는 가해자, 술주정꾼, 집에서 유일하게 나를 칭찬하던 사람. 이 모든 것이 가해자 혹은 아빠라는 사람과 연결된 의미망이다. 성폭력 생존자가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와의 관계에 얽혀있는 의미가 이처럼 단일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정희의 담임 선생님이나 나처럼, 사람들은 생존자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가해자에 대해 ‘좋게’ 말하는 것은 전형적인 ‘피해자’가 할 수 없는 말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혹은, 이런 말들이 피해자가 ‘진짜’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닌 것처럼 오해될까 싶어서이기도 하다.
 
피해자의 이미지만큼이나 가해자의 이미지도 고정되어 있다. 친족성폭력 사례를 듣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가해자가 친부인가요?”이다. 가족 간 성적 접촉은 금기시되어 있기에, 이런 금기가 깨지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 한다. 따라서 가해자는 인간의 도리를 어긴 ‘인간 말종’ 혹은 ‘짐승’으로 그려진다.
 
이렇게 되면 가해자가 가족과 사회 속에서 어떠한 위치와 권력, 역할을 갖고 있었는가? 피해자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상호 작용했는가? 하는 질문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게 된다. 정희의 담임 선생님에게 있어서 정희의 아빠는 성폭력 가해자일 뿐, 돈을 벌어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는 가장이거나 좋은 재능을 물려준 아빠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불쌍한 피해자’, ‘짐승 아버지’로 양극화된 이미지는 친족성폭력을 매우 특별한 ‘사건’으로 보게 만든다. 친족성폭력을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건, 사회에서 자주 일어나지 않는 예외적인 사건으로 바라보면, 일시적인 분노를 일으키거나 피해자를 동정하는 것에서 그친다. 친족성폭력이 생존자의 삶에서 지속되는 사건이라는 점은 고려되지 않는다.
 
생존자의 삶 속에서 친족성폭력 경험이 갖는 다양한 의미망을 드러내는 것은 생존자가 갖는 힘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생존자가 어려운 조건 속에서 자신의 삶을 이끌어 온 사람이며, 자신의 위치에서 피해 경험을 이해하고 치유해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기 위해, 우리가 가진 고정된 시선을 넘어서는 일이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