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저널 일다에서 연재되고 있는 친족성폭력에 관한 글을 공유합니다

이 글이 많은 생존자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폭력보다 무서운 것은 가족의 해체?
‘친족성폭력’ 이야기③ 딸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엄마
<여성주의 저널 일다> 여름
※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기관 ‘열림터’(성폭력피해자 쉼터)의 활동가들이 ‘친족성폭력’ 생존자들과 만나온 경험을 토대로, 사회가 친족성폭력을 어떻게 바라보고 생존자의 삶을 이해하며 또 다른 범죄를 예방해가야 할지 모색해봅니다. [편집자 주]
 
아빠가 특별히 예뻐하는 딸
 
지우(가명)는 세 자매 중 장녀이다. 초등학교 입학도 하기 전인 여섯 살 때부터 아빠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아빠는 지우가 건강하게 잘 크고 있는지 확인하는 거라면서 가끔 다른 가족들 모르게 따로 불러 지우의 몸을 살펴보거나 만졌고, 아빠 자신의 몸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빠는 지우를 사랑해주는 것이라 말했다. 지우는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어 무섭기도 했지만, 그런 행동 다음에는 항상 자신이 갖고 싶은 것들을 사주는 아빠를 보며 자신이 사랑 받고 있는 것이라 믿었다.
 
7살이 된 어느 날, 지우는 엄마에게는 비밀을 만들면 안될 것 같은 생각에 아빠가 자신에게 하는 행동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런데 엄마의 반응이 이상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그런 말 함부로 남에게 얘기하면 안 된다” 라며 지우를 혼냈다. 지우는 엄마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는 엄마의 말을 어길 수 없었다. 게다가 엄마는 자주 아팠기 때문에 엄마를 화나게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지우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갖게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쯤으로 기억되는 그 날, 역시 아빠가 지우를 방으로 불러서 지우의 몸을 살펴보며 만지고 있었다. 그런데 외출했던 엄마가 갑자기 집으로 와서 방문을 열었고, 방안에 있던 지우와 아빠의 모습을 본 것이다. 아빠는 그 순간 갑자기 다른 표정과 태도를 취하며 ‘아빠에게 왜 이러냐’고 하면서 지우를 질책했고, 엄마 역시 ‘다 큰 딸이 아빠에게 무슨 짓이냐’며 이상한 아이로 취급했다.
 
지우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졌다. 아빠, 엄마의 행동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생겼다. 그 날 이후로도 아빠는 다른 가족들 몰래 부르는 날이 많았고, 지우는 아빠의 행동을 막지 못했다. 아빠는 이전과는 다른 무서운 표정과 태도로 지우를 대하며 아빠 말을 듣지 않으면 엄마에게 말해 혼이 나게 할 것이라 했다. 그리고 아빠 말을 잘 들으면 엄마에게 말하지도 않고, 원하는 선물도 사주겠다고 했다. 지우는 아빠의 달라진 태도에 겁을 먹었고, 엄마에게 혼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빠의 말을 따랐다.
 
그 날 이후 지우의 기억 속에 엄마는 없다. 자신을 비난했던 엄마의 말들이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다. 지우는 자신에게 성폭력을 가해한 아빠에 대한 원망 못지않게, 자신을 믿어주지 않고 보호해주지 않은 엄마에 대한 원망과 상처가 컸다.
 
친밀한 부녀 사이에서 무기력한 엄마
 
이진숙씨(지우의 엄마, 가명)는 딸이 어릴 때 이상한 얘기를 들었다. 딸이 말하기를, 자신의 남편이 딸의 몸을 만지고, 남편의 몸도 만지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당시 이진숙씨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무슨 말을 하느냐, 그런 말 함부로 남에게 얘기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딸을 질책했다.
 
아이의 입 단속을 시킨 뒤 관련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다. 잠깐 남편과 아이의 관계를 생각해보았지만 부녀 사이는 돈독해 보일 뿐이었다. 남편은 유독 큰 딸인 지우를 예뻐했고 아이와 시간도 많이 보냈다. 딸에게 너무도 자상한 아빠였고, 지우 역시 사랑스러운 딸이었다. 가끔 너무 유별나다는 생각이 들고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자주 아픈 자신을 대신해 딸을 챙기는 남편이 든든하고 고마웠다.
 
그러던 어느 날 이진숙씨가 아이의 방문을 열었을 때,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목격했다. 딸아이의 몸을 만지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본 것이다. 그 순간 남편은 갑자기 딸에게 왜 이러냐면서 화를 냈고, 이진숙씨 역시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어릴 때 딸아이가 자신에게 이상한 얘기를 처음 꺼냈을 때처럼 아이를 비난했다. 다 큰 딸이 아빠에게 무슨 짓이냐고.
 
그 이후 이진숙씨는 무섭고 두려웠다. 도대체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남편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술을 먹고 폭력을 휘두르는 날이 눈에 띄게 늘어났고,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던 이진숙씨에게 경제적으로 한 푼 도움도 주지 않겠다며 큰소리쳤다.
 
이진숙씨는 변해가는 남편을 보며 더욱 혼란스러웠다. 딸아이와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는 남편과 이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지만,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거의 없는 터라 아이를 혼자 키워야 하는 상황이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혼녀가 되어서 받게 될 주변의 시선이 너무 두려운 나머지, 남편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고 사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의 엄마 역시 취약한 상태인 경우가 많아
 
열림터에 오는 친족성폭력 피해자들의 원 가정을 살펴보면 이혼가정 또는 조부모가정이어서 엄마가 없는 경우가 많다. 또, 엄마가 있는 경우라 해도 엄마 역시 아빠에게 가정폭력 피해를 입고 있거나 경제적으로 무력한 상태로 가장에게 전적으로 의지하여 생활하고 있어 피해자를 도와주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경우가 많다.
 
이진숙씨도 사실 남편에게서 가정폭력 피해를 입고 무력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괜찮은 부부 사이로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남편은 아주 가혹하게 아내를 구속했고 폭력을 일삼았다. 결혼 초기 여러 번 가출을 시도했지만 매번 남편에게 붙잡혔고, 나중에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살았다. 그러는 중에 딸아이가 성폭력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이진숙씨는 그 사실까지 직면하기 어려웠고,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아내인 자신에게 함부로 하는 것을 넘어서 아이에게까지 함부로 대하는 남편을 용납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진숙씨에게 남편을 어찌할 힘은 없었다.
 
이진숙씨는 자신의 가정 내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남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실제 열림터 입소자들의 많은 엄마들이 성폭력 사건 자체를 부인하고, 도리어 피해자인 자녀가 거짓말을 꾸며내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사건 자체를 없던 일로 하고자 한다. 게다가 아이를 양육하기 위한 경제적인 여건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라면,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보다 그래도 남편 옆에서 키우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다.
 
딸의 성폭력을 모른 채 하는 엄마의 무책임함을 정당화하거나 옹호할 수는 없다. 다만 친족성폭력 피해자들의 엄마가 처한 열악한 상황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부분이 있다. 그녀들 역시 또 하나의 폭력피해자로서 아주 취약한 상태였고, 성폭력 피해를 당하고 있는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만한 자원도 충분하지 않았다. 피해자를 비난하는 태도를 취하고 가해자를 옹호하는 것 같은 그녀들의 모습은, 폭력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진 상황에서 인간이 보이는 무력함에 가까운 것이다.
 
모두 바라지 않는 것, 가족의 해체
 
지우는 중학교 성교육 시간을 통해 자신이 겪은 일이 성폭력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뒤, 학교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집을 나와 열림터에서 생활했다. 쉼터 생활을 시작하면서 아빠에게 성폭력을 당하지 않게 되고, 자신을 비난하는 엄마도 만나지 않을 수 있게 되어 좋았다. 그렇지만 수시로 생기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가족 중에서도 가장 그리운 사람은 엄마였고, 쉼터 생활이 길어질수록 엄마와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욕구도 함께 강해졌다. 흔히 말하는 좋은 엄마를 갖고 싶었고, 따뜻한 보호를 원했다. 무엇보다도 엄마가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믿어주기를 바랬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가족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고, 그 이후 다른 가족에게서 비난을 당하는 2차 피해까지 입은 상황에서 여전히 그 가족구성원 간의 관계 회복을 원하는 피해자의 모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걸까?
 
혈연과 혼인을 중심으로 맺어지는 가족 형태를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 사회에서 친족성폭력 피해자와 그들의 가족구성원들 역시 그것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그만큼 가족 관계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거나, 구성원으로서 함께하기 어려워지는 상황 앞에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느끼는 상실감은 크다.
 
성폭력 사건이 드러난 후 가해자가 법적 처벌을 받아 감옥에 들어가거나 부모가 이혼했을 때, 가족 해체에 대한 책임을 피해자에게 넘기는 경우도 많다. 피해자 역시 “그냥 참고 살았어야 하는 건 아니었나” 식의 자기 비난으로 힘들어하기도 한다. 또한 피해자는 연애, 결혼 등의 상황 앞에서 자신이 겪은 성폭력과 관련한 가족의 이야기를 상대방과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어려움을 겪거나 아예 이야기하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가족 해체에 대한 고민이나 두려움이 클수록 친족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풀어가려고 노력하기 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가족이 해체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먼저 하기 쉽다. 결국 피해자가 혼자 감당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정상가족’에 대한 고정관념은 깨져야 한다
 
친족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성폭력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엄마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를 궁금해 한다. 그 질문에는 성폭력 피해자의 엄마가 엄마로서의 주어진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비난이 깔려있다.
 
하지만 성폭력 사건에서 마땅히 비난 받아야 할 사람은 가해자이다. 가부장 혹은 가부장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가해자인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그들은 자신의 가족을 본인의 소유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딸, 아내를 포함한 주변의 가족들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폭력을 행사하여 무력하게 만든다.
 
▲ 혼인과 혈연 중심의 '정상가족' 고정관념이 친족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더욱 어렵게 만든다.  ©출처- 건강가정지원센터의 사업홍보 이미지
친족성폭력 가해자는 아빠, 남자형제 등 직계 가족에서부터 친인척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가해자들이 보이는 공통적인 부분은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가족 해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이용해 피해자와 가족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친족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가해자, 피해자를 둘러싼 가족 관계 안에 얽혀있는 상황들을 하나씩 제대로 살펴봐야 한다. 그것의 핵심은 가부장제 문화이다. 우리 사회는 혈연과 혼인을 중심으로 맺어진 가족 형태를 우선시하며 이상적이라 여기고, 그것과는 다른 형태의 가족은 불완전하게 여긴다. 소위 ‘정상가족’을 유지하는 것은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로 생각된다.

 
‘정상가족‘을 꾸리지 않거나 그에 속해 있지 않으면,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 무조건적으로 사회적 비난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설사 친족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가족이라 하더라도 가족의 해체는 생각하기 어려운 대안이 된다.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가 가부장 중심의 가족 형태에 부여하고 있는 가치, 고정관념에 조금씩 균열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성폭력, 특히 친족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의미 있는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