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저널 일다에서 연재되고 있는 친족성폭력에 관한 글을 공유합니다

이 글이 많은 생존자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피해 ‘이후’의 삶을 상상할 수 있는 힘
‘친족성폭력’ 이야기⑤ 피해경험과 함께 살기
<여성주의 저널 일다> 향심
※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기관 ‘열림터’(성폭력피해자 쉼터)의 활동가들이 ‘친족성폭력’ 생존자들과 만나온 경험을 토대로, 사회가 친족성폭력을 어떻게 바라보고 생존자의 삶을 이해하며 또 다른 범죄를 예방해가야 할지 모색해봅니다. [편집자 주]
 
‘피해자는 어떤 후유증을 겪는가’라는 질문
 
▲ 은수연의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그 사람에게서 벗어나기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러나 벗어난 뒤에도 기다란 칼이나 화살처럼 내 가슴에 푹푹 박혀 있는 기억들은 계속 예측하지 못한 곳곳에서 나를 아프게 쑤시고 올라왔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73p.

 
친족성폭력 피해 경험을 책으로 펴낸 은수연은 성폭력 피해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고통이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생존자에게 남겨진 기억과 감정들은 피해에서 벗어난 ‘이후’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때로는 또 다른 고통을 만든다.

 
흔히 ‘어떤 일을 치르고 난 뒤에 생긴 부작용’(네이버 국어사전)을 후유증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친족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생존자들은 어떤 후유증을 어떻게 겪게 되는가. 후유증은 피해 이후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요소일까. 친족성폭력 생존자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고민할 때, 이 후유증에 대한 걱정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친족성폭력 피해 경험을 연구한 자료들은 이러한 성폭력이 가장 가까운 보호자에 의한 피해이기 때문에 치명적인 외상을 남기게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피해자의 우울, 불안, 대인관계 문제, 자살, 자살 충동, 자해, 타인에 대한 불신감, 소외감, 분노감, 순결 상실감, 남성 혐오, 성적 의존과 거부 등에 이르는 수많은 후유증이 보고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가 친족성폭력 피해자에 대해 묻는 가장 곤란한 질문은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 어떤 후유증을 겪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답은 이러한 ‘후유증’을 경험하기도 하고, 경험하지 않기도 한다는 모호한 것이었다.

 
이 모호한 답의 시작은 친족성폭력이 특정할 수 있는 ‘어떤 일’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친족성폭력은 일상적이고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특성을 갖기 때문에, 생존자들에게는 일상적이거나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일의 성격을 갖는다. 집에서 벗어나는 것 역시 주변 상황과의 타이밍 속에서 가능한 일이라 특정한 일의 전후를 구분하기 어렵기도 하다.

 
보통 집을 벗어난 친족성폭력 피해생존자들은 주거 공간을 옮기고, 기존의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상태로 살아가게 된다. 집을 벗어난 이후에 피해자는 예전과는 다른 주거지와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생활 환경이 크게 바뀌는 것이다. 친구나 선생님, 지역 자원 등의 사회적 관계 역시 단절된다. 동시에 그동안 겪어왔던 성폭력을 ‘해결’하고 ‘치유’해야 하는 큰 과제를 마주한다. 생존자들은 특정 사건을 경험하고 ‘원래’의 환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급변한 환경 속에 놓이게 된다.

 
생존자들에게는 생활 환경의 변화가 주는 혼란감과 적응의 문제를 겪게 되기 때문에 집에서 벗어났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하거나 편해지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된다. 피해 이후와 환경의 급변함을 동시에 겪어야 한다. 이 글은 새로운 환경에 필요한 새로운 적응 방법을 발견해 나가지만, 여전히 과거의 경험과 습관을 가진 사람으로서 어떻게 이 시간을 보내는가, 두 모순된 시간이 공존하는 경계의 시간을 사는 생존자들의 전략을 통해 피해 ‘이후’의 삶을 이야기하려 한다.

 
다 내 잘못인 줄 알았는데…‘피해’의 발견

 
“그냥 일단은 그 상처를 인지했다는 자체가 커요. 전에는 아예 몰랐거든요. 그냥 다 내 잘못이고, 내가 나빠서 생긴 일이라고 느꼈어요. 친척들도 아빠도 나에게 다 (집 나간) 엄마 닮아서 그런 거라고 비난했으니까. 집에 있을 때 왜 내가 친구들보다 예민하고 생각이 많은지, 남자친구한테 왜 그리 집착하는지 늘 나 자신이 이상했어요. 이제 원인을 알게 된 거잖아요. 지금 제 모든 행동이 성폭력 ‘트라우마’라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부터 이런 일이 있어서 그랬구나. 제 자신이 더 이해돼요.” (나현)

 
“저는 아직 제가 피해자라는 사실이 너무 중요하고 무겁게 느껴지거든요. 지금은 피해자라는 걸 숨기기보다 오히려 그런 걸 다 얘기하고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내 상처를 진짜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들 만나고 싶어요.” (소라)

 
나현은 중학교 때부터 5년여 간 함께 살던 삼촌에게 성폭력 피해를 겪었다. 중학교 때 처음 피해가 있고 여러 번 가출 시도를 했지만 번번이 아빠에게 잡혀 들어왔다. 우연히 피해 사실을 알게 된 남자친구의 도움으로 열림터에 오게 되었다.

 
나현의 반항 행동과 가출이 심해지자 가족들은 나현이 엄마의 나쁜 행실을 물려받은 것이라고 비난했다. 나현은 역시 자신이 또래와 다르다고 생각하며, 엄마의 영향인지, 삼촌의 성폭력 때문인지, 자신이 진짜 이상한 사람이기 때문인지 늘 의심하고 걱정했다. 자신의 힘듦을 설명할 언어가 없던 나현에게 ‘트라우마’는 그간의 혼란과 모호함을 정리할 수 있게 했고, 성폭력이 그 원인이었음을 인식하게 해주었다.

 
9년간 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을 당하다가 맨발로 집을 뛰어 나왔던 소라도 나현과 비슷한 전략을 취한다. 소라는 학교에서 성폭력 개념을 배웠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성폭력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성폭력은 피해자가 싫다고 하는데도 강제로 당하는 것이라고 들었지만, 자신의 경우에는 강제로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림터에 오게 되면서 아빠의 행동이 성폭력임을 인식하게 된 소라는 뒤늦게 과거의 경험을 피해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은 소라에게 의미 있는 발견이다. 소라는 피해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타인과의 관계에서 확인 받고 싶어하면서,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생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피해’ 혹은 ‘트라우마’로 의미화하는 것은 중요한 과정이다. 이상한 일 혹은 기분 나쁜 일로 생각했던 경험에 사회적인 이름이 생기면서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 그치지 않게 된다. 사회적 명명을 통해 성폭력으로 인한 고통은 이제 남들도 알고 이해해주는 사회적 경험이 된다. 사회적 경험이 된다는 것은 타인과 소통할 수 있게 되는 것, 피해자를 지지하고 이해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장이 열리는 것을 뜻한다.

 
급격히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기, 갈등하기

 
그러나 생존자들의 ‘피해’자 되기 전략은 현실적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열림터에 사는 동안 나현과 소라는 ‘마음이 아프다’는 이유로 직장이나 학교를 쉽게 빠지고, 정해진 약속을 잘 지키지 않았다. 과외 공부를 하다가도 옛날 생각이 난다며 울어 활동가들을 놀라게 만드는 일도 있었다.

 
어쩌다 거짓말이 드러날 때, 아빠가 한 것처럼 자신을 대할까 봐 나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고 하면,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지 주의를 줘야 할지 매번 고민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을 통해 지각과 거짓말이 성폭력 피해와 정말 관련 있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히려 생존자들이 보이는 반응이 집에서 체득한 생활 방식과 밀접한 연관성과 연속성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생존자들이 집에서 체득한 생활 방식은 집을 벗어난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유일한 보호자인 가해자는 피해자의 잘못을 눈감아주는 조건으로 성관계를 요구하거나, 성폭력 사실이 알려 질까 봐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차단한다. 학교에서는 학습이 부진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아, 긍정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사회적 규칙과 규범을 준수하기보다는 어른들의 눈에 ‘걸리지 않는’ 것을 더욱 중요한 규칙으로 학습하게 된다. 집에서 피해는 묵인되고, 규칙 위반은 용인되었다.

 
그러나 집을 벗어나면서 생존자들은 다른 사회적 역할과 수행을 요구 받는다. 새로운 환경은 생존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피해’로 돌아보게 하고, 동시에 정해진 규칙과 규범을 준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집과는 다른 환경을 살기 위해 생존자들은 다양한 충돌과 갈등을 겪는다. 특히 열림터와 같은 쉼터나, 전학하게 된 학교, 혹은 자립을 위해 다니는 직업학원이나 회사 같이 특정 규범을 요청하는 곳에서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식의 삶의 방식은 갈등을 만든다.

 
열림터 활동가는 어떤 것은 피해와 분리해야 한다고 말하고, 또 어떤 것은 힘들어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라고 설명한다. 당연히 ‘마음이 힘든’ 생존자와 활동가는 긴 ‘말싸움’의 시간을 갖는다. 이 ‘말싸움’은 생존자에게 자신이 놓인 환경과 그 규칙이 바뀌었음을 전달하고 해석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것은 피해의 부작용이기보다는 ‘피해자 되기’를 통해 새로운 사회적 정체성과 사회적 질서를 만나고 수행하는 과정이라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

 
성폭력 ‘이후’의 삶은 전보다 더 다채롭다

 
성폭력 피해는 어떤 식으로든 삶에 영향을 주고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그 영향은 전부 부정적이거나 병리적인 것은 아니다. 생존자들이 집을 벗어나 보이는 반응은 피해 상황과 자라온 환경에서 체득한 생존 전략으로서 의미가 있다.

 
생존자들이 피해 이후 어떤 삶의 장에서 누구를 만나며 살아가는가에 따라 끊임없이 그것의 의미가 변화한다. 생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바꿔가는가, 변화하는 삶의 조건에서 무엇을 체득하는가는 다양한 삶의 전략을 체현하는 시간이 된다.

 
성폭력 피해에서 벗어난 ‘이후’ 삶은 이전보다 더 다양하고 다채롭다. 매일 하나씩 가해자가 하지 말라고 했던 행동들을 해보면서 해방감을 느꼈다는 생존자, 열림터에서 나간 지 2년이 지나고 나서야 심리치료를 받고 싶다고 찾아온 생존자도 있고, 다시 집에 들어가서 가해자와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사는 생존자도 있다.

 
생존자들은 변화를 경험하며 자신의 피해 경험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피해 속에서 구성된 한때의 삶의 전략을 다양하게 변화시켜 나간다. 이러한 생존자의 오랜 여정은 피해 ‘이후’의 삶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