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괜찮은 건 아니다(Everything will not be fine)> 인권해설 전문

 

밥 먹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마당에서 담배 피우고, 식물을 기르고, 걱정하고 안아주고, 어디가 불편한지 물어보고, 중요하고 시시한 이야기를 하고 듣고, 농담하고 장난치고, 친구가 찾아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여기는 “집” 입니다. 안전한 집. 살아 있는 집. 웃음소리, 울음소리가 들리는 집. 그래서 자연과 같은 집. 긴장하지 않고 일상을 영위하는 집. 쉼터는 이런 곳입니다. 그런데 우리말로 ‘쉼터’라고 쓰고 읽으면 몸과 마음의 안식처라기보다 왠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안 가는 게 좋은 곳으로 생각되지는 않은지요?

 

많은 사람들이 크고 작은 충격적인 경험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 경험은 몇 날 밤 자고나면 생각나도 별스럽지 않은 일이 되기도 하고, 강하지만 일시적인 스트레스로 왔다가 곧 사라지기도 하고, 기억의 저편에서 있다가 어느 사이에 눈앞의 생생한 고통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과거의 시간 속에 있는 그 경험, 그때의 감정은 현재의 나에게 어떻게든 영향을 줍니다. 같은 경험에도 사람에 따라 이렇게 다양한 모습들이 나타는 것은 왜 일까요? 성공적인 결과를 최고의 가치로 평가하는 의식이 보편적인 곳에서는, 그 경험을 한 사람의 의지가 약하거나 강해서 혹은 원래 현명하거나 바보 같아서 라고 말하는 예가 흔합니다. 그러나 이런 이유들은 트라우마 생존자의 치유를 어렵게 하는 선입견입니다.

 

중요한 것은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이 자기가 속한 공동체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트라우마가 발생하는데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제대로 사과를 했는지, 공동체의 공적이고 사적인 관계에 있는 구성원들이 생존자의 고통을 인정하고 공동의 책임을 통감하는지, 생존자가 치유를 위해 노력할 때 그 노력을 적극적으로나 소극적으로나 지지하는지, 그래서 트라우마의 치유를 생존자 개인의 분투가 아니라 공동체의 과제로 인식하고 있는지, 그리고 유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다각도로 노력하는지 하는 것들 말입니다. 트라우마는 누구나 겪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 치유에는 이런 상호작용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가정에서, 친구들에게, 학교에서, 지역 사회에서, 고통을 인정받기는커녕, 따가운 곁눈질과 수근거림과 내버려둠이 온통 자신을 둘러 쌀 때, 생존자와 그의 생활 사이에는 커다란 절단이 발생할 것입니다. 이런 채로 시간마저 무심히 흐르면 그의 고유한 성격도, 정체성도 변할 것입니다. 그에게는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정지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요.

 

이렇게 이음새도 없이 끊어진 생존자의 생활과 공동체적인 관계는 회복되고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끼니를 챙겨 먹고, 일하고, 친구와 우스갯소리를 하거나 다투고, 밤에 잘 자는 일상생활을 다시 이어가는 것과 치유는 서로를 도와줍니다. 생활을 연습하는 것, 연습을 통해 익숙해지고, 다시 자신의 삶을 사는 것! 그렇게 삶은 계속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트라우마 생존자들에게 쉼터는 삶의 과정 중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하지만 평범한 과정의 일부분일 것입니다. 서로 눈 마주치며 끊임없이 대화하고, 옆 사람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고, 시간이 흐르면서 스스로 자연과 같이 변하며 나아지는 곳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괜찮아진다는 것은 어떻게 된다는 것일까요? 트라우마를 경험하기 이전으로, 아무 일도 없었던 때로 돌아간다는 것일까요? 마음에 고통 한 점 없는 평화로운 상태가 된다는 것일까요? 강인한 의지와 굳센 신념으로 치유회복의 성공신화를 ‘창조’한다는 것일까요? 어떤 일에서 결과만 보고, 그것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트라우마 경험의 유무를 떠나서도 삶을 조급하게, 메마르게, 어리석게 만들기 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은 계속되어야 하기에, 상처투성이 꿰맨 자국이, 그 이음새가 선명하더라도 계속 그 과정을 찬찬히 살피고 돌보며 이어 나아가는 것. 회복의 요체는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이 괜찮지 않을 거라고(Everything will not be fine) 말할 수 있다면, 거기에 고개 끄덕일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 괜찮은 것이 아닐는지요. 사족이지만, 선하고 약하고 부드러운 것은 아직 강한 것이 못된 상태이거나 강한 것이 되어야만 하는 미완성, 미성숙의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성된 온전한 것이 아닐는지요.

 

홍혜선(트라우마치유공동체 사회적협동조합 사람.마음) 2014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