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일, 3일, 태국 남부 지역에 심리지원 다녀왔습니다. 말레이시아 국경에 닿아있는 태국 남부의 Pattani, Yala, Narathiwat와 인근 Songkhla 지역은 '깊은 남부 지역(Deep South)'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en.wikipedia.org

 

 

 

이 지역 인권단체인 Duayjai(Hearty Support) Group의 요청으로, 고문피해 생존자들과 가족들을 만나 심리지원을 진행했습니다. Duayjai Group은 태국 Deep South 지역에서 정치적 이유로 고문과 투옥을 겪은 사람들, 특히 무슬림 고문 생존자와 가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Hearty Support'라니 '사람마음'과 왠지 이름이 비슷한 것 같네요.

 

 

 

DuayJai (Hearty Support) Group

 

 

 

이번 심리지원은 함께 모여 서로 지지하고, 도움을 주고 받으며, 이분들이 힘을 되찾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Deep South에 고문생존자 전문 트라우마 센터를 설립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참여하셨던 한 고문 생존자 분은 Deep South의 이야기를 한국의 친구들에게 꼭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저 역시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태국 남부 지역은 인구의 75-80%가 말레이 무슬림이고, 이들은 Pattani-Malay 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태국 정부와 이들의 갈등은 세기를 지속해 왔습니다. 1980년대 이후 태국 정부는 회유책을 마련하여 평화가 유지되는 듯 보였으나, 미국 9.11 사태 이후 무슬림에 대한 의심과 부당한 대우는 태국 지역 내에서도 갈등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설상가상, 2003년에 태국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수천 명이 학살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때 많은 무슬림 청년들이 죽임을 당했다고 하지요. 이후로 남부 지역의 Pattani-Malay 정체성(옛 파타니 왕국)을 지닌 분리주의자들과 태국 정부 사이의 폭력 사태가 폭발적으로 발생해 오고 있습니다.

 

태국 하면 불교와 방콕이 떠오르시지요? 무슬림과 Pattani인 정체성의 사람들도 태국에 살고 있어요. 남부 지역 Pattani-Malay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국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고 여기고, 경제 개발 정책에서도 차별을 겪는다고 느낍니다.

 

지금도 여전히 일부 지역에서는 폭탄 폭발이나 총격이 일상처럼 일어납니다. 2004년부터 2014년까지 14,128건의 폭력 사태가 있었고, 사상자가 17,005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분리주의자들은 태국 관료와 정부, 불교인들을 대상으로 폭력을 행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상자의 절반 이상은 무슬림이고, 대부분은 민간인이라고 합니다.

 

Duayjai Group의 말에 따르면, 무슬림 민간인을 향한 태국 정부의 국가폭력 역시 문제라고 합니다. 폭력이나 폭탄 소지죄로 무슬림 민간인을 체포하고, 고문하지만, 무죄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폭탄 폭발이나 고문으로 피해를 입은 무슬림들은 태국 정부에 소속된 정신건강 전문가를 믿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Deep South의 갈등과 무슬림들이 겪는 고통을 부인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먼 한국에서 사람마음이 이 분들을 만나뵈러 가게 되었어요.

 

 

 

 

심리지원이 진행되었던 장소.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에서 비공개 모임을 가졌습니다.

 

 

 

남부 Songkhla 지역은 상대적으로 잠잠하지만, 이곳부터 M16 총을 들고 다니는 경찰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치 군복 같은 것을 입고 있었어요. 지역으로 진입할 때 경찰의 검문이 있었는데, 수시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Duayjai Group 활동가는 이러한 검문이나 경찰의 모습이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는 건 아닌지 걱정을 했습니다.

 

무슬림 분리주의자들은 체포되면 고문을 겪는데, 이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합니다. 또한 무슬림군과 무관한 일반 무슬림 시민들이 잡혀가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폭발이나 총격 사태의 죄를 무고한 무슬림에게 묻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대부분 무죄로 풀려나지만, 고문, 투옥, 그 이후 이웃 간의 배타와 불신으로 이들은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또한 고문 생존자들은 그 이후 사형이나 살해당하는 위협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고문 이후 신체적, 심리적 후유증은 물론 있었고, 지속되는 분쟁 상황에서 실질적 신변의 위협도 커 보였습니다. 가족들의 고통도 컸고요. 경제적으로 열악하여 생활이 매우 어려운 것도 큰 문제였습니다. 특히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무슬림 자녀들이 폭력 투쟁을 이끄는 분리주의자 주체가 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도 무슬림 고문 피해자를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Duayjai Group은 말합니다.

 

평화를 위해서 회복을 지원하는 것, 분쟁과 갈등 속에서 회복과 평화의 가치를 지켜내는 것, 서로를 비인간화 하지 않고 화해의 길을 모색하는 것, 이는 사람마음에서도 공감이 많이 되는 점이었습니다.

 

 

만남은 이틀 내내 이루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조심스러움과 낯설음 속에서 신뢰와 불신에 대한 대화를 나누어갔고, 고문으로 사람에게 생긴 불신을 이해하며 앞으로 점차 믿음을 쌓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합의를 이루었습니다. 그러자 이 분들은 점점 자신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불신과 고립은 고문의 목적이었으므로 피할 수 없는 결과.

이 자리에 모인 우리가 이 곳을 더 안전하게 만들고 믿음을 쌓아나가야 할 뿐.

 

 

 

이분들은 그 동안 고문 피해자로서 버림받고 무가치한 사람인 것처럼 대우받아 왔지만, 이 만남 안에서 그 누구의 어떠한 말도 경청되, 아주 사소한 움직임과 감정도 존중받는 것이 놀라운 경험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수용의 분위기가 서로에게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분들은 만남을 통해서 '나는 다시 가치 있고 중요한 사람이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통역 보다 더 빠르게 교감되는 인간 사이의 배려심과 존중감 속에서 묘한 뭉클함을 느꼈습니다.   

 

모임을 마무리하면서, 어떤 분은 '말할 수 없는 것(wordless)'에 '말(word)'을 붙이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잔혹한 경험에 이름을 붙이는 것, 그리고 알리는 것, 이것이 곧 회복의 시작이겠지요. 당신이 찾은 가장 중요한 말이 무어냐라고 물었더니 그는 '관계'라고 대답했습니다. 서로가 함께 있는 것,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것, 서로의 용기와 두려움의 증인이 되어 주는 것. 그는 '관계'가 자신을 가치없는 사람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샤워실에서 만난 집도마뱀 '찡쫑'. 너는 평화롭니?

 

 

심리지원이 끝나고 Duayjai Group 활동가들과 현재 Deep South의 회복을 위해 필요한 일,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서 토론하였습니다. 태국의 정신건강전문가들의 인식과 고문피해 지원 역량을 높이는 것은 시급한 과제였습니다.

 

그리고 태국 정부나 분리주의자 어느 한 쪽 편에 선 것이 아니라, 온전한 회복을 지원하고 더 이상의 폭력을 중단하기 위한 치유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중립이 아닌. 인권과 생명 존중, 평화의 편에 서는 것이겠지요. 

 

심리지원에서 Deep South에 남긴 가장 중요한 부분은, 폭력과 위협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생존자의 그 어떠한 반응도 병리화할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폭력이 지속되는 곳에서 공포와 절망은 어찌보면 당연한 반응이겠습니다. 분쟁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신경안정제를 처방하거나 '장애' 진단을 내리려는 정신건강 전문가들의 관점은 고통을 부인하는 것 만큼 이들을 좌절시키는 일이었습니다. 두려움을 수용하는 가운데 각자의 존엄과 용기에 주목하며, 화해와 평화를 함께 모색하는 공동체의 구축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Deep South에서의 일정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앞으로도 사람마음이 Deep South의 심리지원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래 봅니다.

 

Deep South의 생존자들에게 관계와 용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