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가 된 사람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구술 기록집

 
‘숫자가 된 사람들’은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처음에 그것은 나의 이야기였다. 7, 80년대 꼬맹이였던 한국 사회 모든 성인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 시절 꼬마였을 내가 만약에 부산에서 길을 잃었다면, 나 역시 경찰을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 부산의 경찰은 부모를 찾아주기보다는 나를 형제복지원으로 보냈을 것이고, 나 역시 그곳에 감금되어 온갖 고문을 견뎌야 했을 것이다. 혹은 내가 그 시절 부산에 사는 꼬마였다면, 늘 낯선 길을 탐험하며 놀기 좋아했던 나였기에, 아마도 동네 골목에서 탐정 놀이를 하던 어느 평범한 날에 납치되어 형제복지원에 감금되었을 것이다. 왜 하필 그 골목에서 놀았을까를 평생토록 자책하면서.

우리들의 이야기

 ‘숫자가 된 사람들’은 그렇게 형제복지원에 끌려가 감금되었고, 보호와 갱생이라는 얼굴로 학대를 일삼는 가장 잔혹한 방식의 고문을 겪었다. 그러다 죽어 나오거나, 죽음을 무릅쓰고 도망 나왔다. 아니면 1987년, 복지원의 박인근 원장이 고작 몇 년 징역을 살고 말았던 사건이 터져 형제복지원의 거대한 철문이 열리기까지, 수년간을 차라리 죽기만을 바라며 목숨을 이어가야 했다.

구술 기록집을 읽고 나니, 결국 이 기록은 모두의 이야기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 시절 집 잃고 길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넘어, 형제복지원의 실상을 알지만 침묵했던 당시 사람들의 이야기고, 오늘날에도 학대를 견디는 아이들과 약한 자들의 이야기고, 그들의 존재를 알지만 여전히 침묵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기록집에 따르면 1975년 내무부 훈령 제 410호의 발령으로 당시 ‘부랑인’에 대한 단속과 수용이 가능했고, 형제복지원은 수용 인원을 근거로 몇 십억 대에 달하는 국고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3000여명의 사람들을 수용하던 형제복지원에서 사람의 명수는 곧 돈이었고, 당시 길을 떠도는 약한 자들은 형제복지원에 돈을 가져다주는 쉬운 먹잇감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길을 헤매던 약한 사람들이 탑차에 강제로 실려 형제복지원에 납치되었다. 

복지의 외피를 쓴 폭력의 시스템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끔찍하게도 잘 작동하는 폭력 시스템이 필요했을 것이다. 복지사업이라는 선량한 외피의 속내는 아주 체계적인 고문의 방식을 따른다. 형제복지원의 기본 시스템은 군대 조직과 같았다. 그리고 체계적인 고문 시스템 속에서 신체를 통제하고, 나아가 정신을 세뇌시키고, 결국에는 영혼을 앗아갔다. 원생에게 이름은 없다. 입소한 년도로 시작되는 번호가 이제부터 이들의 이름이다. 납치된 자들은 신입소대에서 폭력에 길들여지고, 더 이상의 저항이나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학습한다. ‘언제 집에 보내주세요?’라는 질문은 ‘이제 집에 갈 수 없구나’ 하는 체념으로, ‘목숨을 건지려면 적응해야 한다’는 세뇌로, 그리고 결국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는 산송장의 상태로 옮아간다. 

신입소대를 거친 이들은 연령대나 노역에 따라 다른 소대로 전방을 간다. 아이들이라면 사도신경이나 주기도문을 암기하고 제식 훈련을 받는 것, 나이가 차면 대가 없는 강제노역에 동원되는 것이 이들의 일상이다. 자칫 실수하면 가혹한 구타와 기합이 주어진다. 더 잘 학습하거나 노동하는 것이 구타의 목적이 아니다. 구타의 목적은 지배-복종 체계의 완성과 인간성의 말살이기 때문에 이것은 고문이다. 그래서 구타가 살인으로 이어져도 일사불란한 침묵 속에서 핏자국은 금세 사라진다. 그것은 더 효과적으로 복종을 유도하는 방식일 뿐이다.

한 명의 실수는 전원의 구타와 기합으로 이어진다. 규율에서 이탈하는 행위는 곧 죽음이므로 원생들은 학대를 목격하는 동시에 침묵을 학습했다. 때문에 친밀감과 상호 돌봄은 원천 봉쇄된다. 원생, 조장, 서무, 소대장, 중대장의 위계에서 원생이 조장이 되고 소대장이 되어 결국 피해자가 학대의 주체가 되면, 형제복지원의 잔혹은 완성이 된다. 

침묵을 강제한 고문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하는 것은 가장 잔혹하고, 따라서 가장 효과적인 방식의 고문이다. 그것은 인간성과 영혼을 박탈하고 침묵을 강제하기 위한 최후의 고문이다. 그것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아주 전략적인 고문 시스템의 작동이다. 심지어 가치 체계를 한참 배워나갈 어린 아이들이 그것을 겪었다면, 고문과 폭력이 곧 아이들의 가치관이자 정체성이 된다. 가해자는 그것을 노린다.

침묵을 유도하는 또 다른 행위는 성학대였다. 약한 아이들은 조장과 소대장의 성학대 대상이 되었다. 모두가 알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중대장의 점호가 끝나고 한 밤중이 되면, 문이 잠긴 소대장의 세계 안에서 어떤 성적인 가혹 행위가 벌어지는지. 매일 밤, 아버지로 여겨야 하는 소대장이 자행하는 성적 잔혹 속에서 아이들이 경험한 것은 영혼의 죽음이었다. 죽음 말고 탈출 방법은 없었다. 

이 폭력 시스템은 지금까지도 침묵으로 작동하며 여전히 유효하다. 단순한 피해자-가해자, 선-악의 이분법적 도덕 기준으로 형제복지원 사건을 읽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 증언은 돈, 폭력, 학대, 그리고 체계적인 지배-복종의 시스템이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진실을 알고도 계속 내가 무표정하고 무지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시스템을 해체하고 회복에 집중하는 것이 남은 우리의 역할이 아닐까. 책을 미처 덮지 조차 못한 채 절박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진실을 밝히고, 누가 어떠한 피해를 겪었으며, 이 피해를 어떻게 복구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실행해야만 한다. 

외면해서는 안 될 얼굴들

7, 80년대면 너무도 가까운 과거이다. 부랑인 갱생이라는 무표정한 얼굴에 속아 넘어가는 것은 우리의 무지 때문이다. 인정해야겠다. 이 무지는 결국에는 ‘모른 척’과 같은 말이다. 형제복지원을 부인한다는 것은 저항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가해진 고문과 살인에 공모함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은 아주 중요하고,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진실을 담고 있기에. 다른 사람들도 이 책을 읽어서 인간의 무표정에 숨겨진 다양한 얼굴들을 직시하면 좋겠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실이 묻히고, 그 안에서 고통 받았던 사람들의 회복에 주의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우리 사회가 학대를 허용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 약한 자들에 대한 학대는 지금 이 순간 어디에서든 진행형이라는 뜻이다. 이 책을 읽고, 더 이상은 무표정한 얼굴로 살고 싶지 않아졌다.

이 책은 아주 중요하지만 모든 것을 다 문자로 담지는 못했다. 그것이 폭력의 속성이다. 독자들이 아주 정성들여 자세히 읽어서, 행간에 숨겨져 있는 무언의 증언도 읽어내기를 바란다. 그래서 더 많은 증언들이 솟아나고, 결국엔 우리의 인간성으로 폭력의 시스템을 녹여버릴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목격했으면 좋겠다. 

지금 형제복지원 생존자와 대책위원회는 진상 규명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 장벽이 높다고 한다. 뛰어넘을 수 없었던 형제복지원의 거대한 철문처럼. 7,80년대 형제복지원의 어린 원생들이 이제 중년이 되었고, 몇몇이 용기를 내어 철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더 이상 외면할 수는 없다.

 

 

*글쓴이: 최현정(사회적협동조합 사람마음 대표, 임상심리학박사)

 

*이 서평은 인권오름 제446호(2015년7월9일)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