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2일, 진


도망자와 가난뱅이


 

도망에 대해 말해야겠다. ‘도망자는 내 안의 여러 역할 중 특히 활성화된 역할이다. 이 역할이 트라우마와 관련돼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는 데 뿌듯함을 느낀다. 지난번에도 얘기했듯, 세상으로부터, (현재와 미래의) 관계로부터, 나쁜 사람, 나쁜 일, 내가 통제할 수 없이 벌어질지 모르는 재난으로부터 나는 도망친다. 힘닿는 대로. 필사적으로. 도망이 삶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면의 나는 어떨까?

 

비대화된 도망자 역할 이면에는 가난뱅이가 있다. 노동할 수 있는 능력. 밥벌이하는 능력이 나는 떨어진다. 아마 로봇이었다면 진작에 폐기 처분됐을 것이다. 사회적 기능도, 기술도, 효율도 평균에 한참 못 미치니까. 알바몬 간단 이력서에서 장점 예시 항목이 뜨면 예시 문장을 한참 들여다보지만, 체크할 게 별로 없다. ‘힘 없어요. 지각 해요. 손 느려요. 계산 못해요. 인사성 어두워요. 정리 못해요...’ 제조생산직 로봇으론 힘이 딸리고, 서비스 로봇으론 사회적 기술이 미흡하고, 관리직 로봇으론 책임에 대한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게다가 남녀 구분된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데 상가 건물 화장실도 안된다. 결정적으로 구모델임에도 한 가지 일에 오래 써서 쌓인 데이터가 없다. 그리하여 알바족으로 최소의 생계비를 버는 나. 가난할 수밖에 없다.

 

아는 사람의 소개 없이, 소개가 있더라도 낯선 세계에 들어갈 때, 무엇보다 일어날 상황에 대한 예측과 통제를 할 수 있는가가 늘 중요했다. 그러나 이 사회의 누가, 어떤 직종 사회가 나와 같은 사람에게 핸들을 주겠는가? ‘핸들을 잡은 주인이 돈 주고 쓰는 사람을 알아서 챙기고 일일이 상의하고 미리 알려주겠는가? 주인은 가해자, 알바는 피해자가 되기 십상인 구조이기에 이 관계에서 싸움 협상이 중요하건만! 이를 지난 해에야 알게 됐다. 핸들을 쥔 사람과 싸운다는 건 엄두가 안 나고, 협상하는 건 힘겹다. 제일 힘든 건 못 싸우고 못 밀당하는 나 자신을 나무라지 않고 견디는 것이다! 싸움도 협상의 기술도, 인내도 모자란 나는 그러기에 피해자-도망자 또는 피해자/가해자-도망자 역할을 반복해왔다.

 

세상에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는데 1인 근무는 늘어간다. 서점 행사 매대에서 혼자 책 파는 일을 하다가 어느 날 보니 내가 매대 주위를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창살만 없지 감옥에 갇혀 있었다. 몸을 한 곳에 붙박아 놓고 멍 때리고 있으니 바보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몸이 피로한 상태로 일하는 날일수록 정신이 멍했다’. 무거운 책을 나르고, 까다로운 손님을 대하고, 가끔 서로 대화를 나누는 서점 직원들을 부러운 눈길로 봤다. 그래서 꿀알바가 아니라 좀더 몸을 쓰고 여러 상황에 놓일 수 있는 일을 찾아 뛰어들었다. 그래봤자 단순 판매 알바지만, 돈은 똑같은데 팔 물건이 책이 아니고, 손님과의 상호작용이 더 복잡하고, 일이 더 많고, 공포스러운 돈계산도 하는.

 

벌써 위기의 순간이 왔다. 몸은 기억한다를 읽으면서 인식한 현재의 두 문제. 어제 밤 자다가 깨서 엊그제 1인 근무를 하다 현금영수증 발행을 안 해서 십오만 원을 물게 생겼는지, 아닌지도 모르고 있음을 알았다. 기기 앞에서 내 몸이 굳는다. 잘못할까봐. 그래서 마감을 할 때 기계적으로 익힌 것만 하고, 현금통이 튀어나왔을 때 그에 대해 인식, 반응하여 닫고 나오지 못하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나중에 보니, 다행히 현금통이 배에 퉁겨졌다 도로 들어가 닫혀 있었다) 또 하나는 싸움이 필요한 순간을 내가 넘겨 버렸음과 그로 인해 내 안에 저장된 화이다. 2 트라우마 상태의 뇌 3 아이들의 마음에서 애착과 조율 부분에서 인식이 됐던 건, 매니저가 내게 한 부당한 행동들-주로 말이 아니고 행동과 시선, 부정적 에너지, 혹은 침묵이다-을 내가 의아하게 여기면서 방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견디면서 보는 것인가? 여기가 당장 뛰쳐나가야 할 곳인가-내가 미치기 전에-, 그 정도는 아닌가? 그 미래를 보느라, 내게 일어나는 상황에 대한 묵과가 이루어지고, 그 묵과는 매니저의 점점 큰 행동을 불러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부당한 행동은 사실인가,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인가? 매니저는 나를 실제로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실제로 나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실제의 나/상대와 내가 느끼는 나/상대 사이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걸 내가 인식하다니! (뜻밖에 이 생각이 불안을 가라앉히는 데 일조했다)

 

막말을 하는 것은 아니나, 표독스런 눈초리로 쏘아 보는 것, 내가 처리하려고 가지고 있던 물건을 뺏듯이 가지고 가 자기가 대신 처리하는 것, 일하는 방식이 아무리 어이가 없다고 해서 내가 정리하던 상자를 들어 바닥에 홱 쏟으면서 이렇게 해야지 하는 것. 매니저는 폭력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으로 나를 학대할 사람인가, 성질 급한 어디나 있는 사람인가? 나는 얼마나 싸울 수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 산 것과 달리 싸움에 힘을 빼는 게 과연 할 만한, 혹은 해내야 하는 일일까? (올해 목표 중 하나는 싸움을 배우는 것이었다) “도망치자.”라는 말이 언제 내 속에서 울릴지 모르겠다. 월급날까지 한 달은 버틸 것이다. 하지만 그만 둬야 되는데 계속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다른 얘기에 앞서 이 얘기를 쓰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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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모임! 체리 취향저격.

빛님이 준비해 오신 티라미슈와 아이들도 취향 저격.

진님이 추천하신 <몸은 기억한다>를 함께 읽기로 했습니다. 

늠늠 좋은 책인거 같아요! 이번에는 진님의 글도 함께 읽으면서 사회에서 살아가는 능력들에 대해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자기 연민과 자기 비난에 대해서도 우린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얘기를 했어요. 

쉽지 않지만 지금까지 잘해내어 오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을 우리 인생을 응원합니다 :) 

제 이야기도 진지하게 들어주시고 조언해주셔서 힘이 되었어요!!


피자 사진은 못 찍었네유. 피자 먹고 후다닥 레드 콘서트!





파일 2017. 9. 7. 19 37 44.jpeg


한국 HIV/AIDS 감염인 연합회 KNP+ 의 사랑방 운영 기금 모금을 위한 레트 콘서트에 

책읽자 팀과 사람마음 활동가 팀이 함께 다녀왔습니다!

콘서트 장에는 아름다운 음악과, PL(HIV/AIDS와 함께사는 사람들)의 따뜻한 유대감이,

그리고 PL의 이야기에 울어버린 책읽자 팀 빛님의 사랑스러운 눈물 콧물 훌쩍이던 소리가 흘러넘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