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약물’아닌 ‘사회적 치유’ 필요 2012. 4. 5.

 

임상심리전문가 최현정 트라우마 치유센터 <사람.마음>열어
<여성주의 저널 일다> 박희정

“폭력, 상실, 차별, 편견으로 인한 마음의 고통은 정신질환이 아닙니다.”
 
<조용한 마음의 혁명>의 저자이자 임상심리전문가인 최현정씨가 최근 트라우마 치유센터 <사람.마음>을 열었다. <사람.마음>은 트라우마를 겪은 당사자, 가족, 공동체를 위해 심리학자, 보건의료진, 인권활동가가 협력하는 치유 공간이다.
 

▲ 트라우마 치유센터 <사람.마음>을 연 임상심리전문가 최현정 씨.     ©일다
사회구조적으로 발생하는 폭력에 둔감한 한국사회에서는 그 폭력을 드러내는 일조차도 힘겨워, 그 이후의 피해자의 심리치유에 대해서는 거의 방치되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들어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인 치유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이해와 지원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때문에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을 위한 전문적인 지원센터가 생긴 것은 매우 주목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트라우마 치유센터 <사람.마음>은 최현정씨가 사재를 털어 개소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했으며 비영리기관으로 전액 후원에 의해 운영된다. 치료비는 경제적 상황에 따라 차등 적용되며 <사람.마음>의 공익치유활동을 위한 후원비로 전환된다. 최현정씨와 함께 운영과 관련된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홍혜선씨가 상근하며, 이 외에도 세 명의 심리전문가가 상담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국가폭력, 성폭력, 조직적 성착취 체계에서 벗어나 삶을 회복하려는 사람들의 치유를 위한 활동과 연구에 노력해온 최현정씨를 만나 트라우마 치유센터 개소의 의미와 활동방향에 대해 들어보았다.
 
-트라우마 치유센터 <사람.마음>에는 심리학자나 보건의료진 이외에도 인문학자나 평화활동가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트라우마 치유는 심리상담하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인권운동이나 인문학적인 개입이 들어가야 가능한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광주에서 진행한 치유프로그램 같은 경우에는 개인의 심리적인 상담과정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그 사건이 역사적으로 차지하는 의미를 깨닫고 통합할 수 있어야 그 사람이 겪은 고통에 대한 완전한 의미 찾기가 가능해진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인문학자들이 해야 하는 부분이다. 경험의 사회적 의미를 찾아주는 역할.

 
-트라우마 치유센터를 만들겠다고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병원 현장에도 있어봤고 시민단체의 단기프로젝트에도 많이 참여해 봤지만 한계가 있었다. 전문적인 치유센터가 없으면 트라우마 피해자에게 안정적인 심리적인 지원을 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병원 같은 경우 그냥 ‘개인 환자’로 굉장히 수동적인 ‘병든 사람’의 정체성을 가지고 온다. 그 사람이 겪은 고통이 사회적인 문제라는 것에 전혀 연결되지 않고 개인의 병리로만 취급된다. 그 고통이 ‘사회적 고통’이라는 걸 명시하고 사회적인 방식으로 치유를 해야 한다.

 
이런 취지에서 많은 시민단체들이 한동안 단기적인 프로그램들을 진행했었는데 사회적인 차원에서의 치유이기는 했지만 지속적이지 못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전문적인 심리적 지원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할 수 있으면서, 이 고통이 사회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말해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센터를 비영리로 운영하게 되는데 재정적인 부분은 어떻게 마련할 생각인지.

 
외국에는 트라우마 센터가 안정적으로 여러 곳 운영이 되고 있다. 트라우마의 속성 자체가 ‘외부의 폭력’으로 인해 개인의 삶이 무너지는 것이다. 게다가 ‘고립’되는 게 가장 큰 고통인데, 당신 병이니까 당신이 치료해라는, 개인에게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것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

 
외국은 대부분 인권재단의 지원을 받아 안정적으로 운영한다. 우리나라는 트라우마 센터가 생긴 적이 없고 트라우마에 대한 인식도 아직 많지 않고, 사실 어떻게 운영해야 하나 정말 난감하다. 머리가 아프다.

 
-‘트라우마’라는 용어가 알려지긴 했지만 아직 대중적인 이해가 부족하고, 때론 오해되거나 오용되기도 하는 것 같다.

 
트라우마의 정의는 정해져 있다. 폭력피해나 상실경험-죽음이나 심각한 신체적 손상과 관련된 경험 아니면 정체성을 훼손시키는 것과 같은 경험. 정의상으로는 그렇다. 충격적인 경험.

 
트라우마가 뭔가에 대해서 강의를 하러 다니다 보면 어떤 집단은 있는 그대로 전쟁, 폭력과 관계된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어떤 집단은 본인들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데 이를테면 어떤 대학 강의에서는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는 것”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비난하는 것” 그렇게 받아들이더라.

 
어떤 사람은 전쟁을 겪고 후유증을 겪지만 어떤 사람은 없고, 또 어떤 사람은 굉장히 작은 스트레스에도 굉장히 큰 후유증이 생긴다. (상처를 받아들이는 정도가) 사람마다 다른 게 맞긴 하다. 일상적인 스트레스는 스몰(작은) 트라우마, 전쟁 같은 큰 스트레스는 빅(큰) 트라우마 이렇게 얘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자신이 겪은 일이 ‘내가 이상해서 혹은 내가 뭘 잘못해서 생긴 고통이 아니다’라는 인정을 받는 게 치유에서 중요한 과정이다. 뭐가 트라우마이건 간에. 만약 본인이 내가 원하는 대학에 떨어진 게 트라우마라면 그렇게 느낄 수 있다. 사회적으로 그 경험을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무엇이 트라우마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고 그 사람의 고통을 인정해주는 게 우선이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얼마 전 좋은 성적을 강요하며 학대를 해 온 엄마를 살해한 한 고등학생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런 경우에는 대학을 못가거나 시험에 떨어지는 것이 정말 ‘트라우마’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병원에서는 이런 문제를 다루기가 어렵다. 사람이 겪는 고통이라는 게 사회나 문화와 상호작용하면서 나타나는 건데 병원에서는 그냥 정신질환이 있는 걸로 진단해버린다. 트라우마 센터는 그 전체의 맥락을 봐주는 곳이다. 그러니까 심리학자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 하는 사람, 의사, 간호사, 활동가 등 관심 있는 사람 전체가 함께 해야 한다.

 

▲ 최현정씨는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에게 전문적인 심리적 지원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공간을 열고 싶었다고 <사람.마음>개소 이유를 밝혔다.     © 일다


-내담자들이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공간을 꾸미는 데에도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다.
 
트라우마 센터는 정말 일상의 편안한 공간처럼 느낄 수 있는 게 중요하다. 외국의 잘 운영되고 있는 트라우마 센터들은 다 이렇게 가정집 같은 형태이다. 병원, 기관 이런 곳에서 상담을 하다가 가정집 같은 곳에서 처음 상담을 한 건데 내담자가 적응하는 속도, 신뢰를 주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병원에서 상담을 했을 때는 내담자가 너무 경계를 많이 한다. 병원이라는 곳 분위기 자체가 내담자를 병자, 환자라고 생각이 들게 만들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가구 같은 걸 고를 때도 모서리나지 않은 둥근 테이블 등을 골랐다. 고문 피해가 있는 분들은 모서리가 진 테이블, 철제 의자 자체를 끔찍이 여긴다. 이런 컵을 우리는 일상적인 걸로 지각하지만 트라우마 있는 분들은 던질 수 있는 흉기로 지각한다. 컵 같은 건 어쩔 수 없지만 물품들을 고를 때 주의를 해야 한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집단상담 프로그램 <희망실현클럽> 신청자를 받고 있던데,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다.

 
<희망실현클럽>은 <사람.마음>에서 준비하고 있는 여러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특히 장기투쟁사업장을 대상으로 한다. 장기적인 투쟁과정 속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활동하면서 개인적 일상생활도 챙기기 어렵고, 앞날이 안 보이는 투쟁과정에서 굉장히 지치고 본인의 힘이 많이 떨어졌을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의 내적인 힘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집단 심리상담을 진행할 계획이다.


실현하고 싶은 하나의 목표를 정해서, 여러 여성들이 만나 집단상담의 형태로 그걸 이뤄갈 수 있게 서로를 지지하고, 심리전문가들이 심리적인 지원을 하게 된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는 그 한 가지 희망을 실현해서 나갈 수 있도록 돕게 될 것이다.
 
-치유프로그램에서 ‘집단상담’이라는 형식을 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특히 트라우마 치유센터에서는 집단상담이 굉장히 중요하다. 트라우마의 영향력은 ‘고립’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내가 받는 고통에 대해 내 느낌이 이상하거나 나 자신의 내부문제로만 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과 함께 참여해 그 고통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공유하고, 내 감정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통해 고립에서 벗어나는 것이 치유의 가장 첫 번째 과정이다. 집단상담은 그것의 가장 좋은 장이 되어 준다.

 
-올해 계획된 다른 치유 프로그램들에 대해 소개를 해준다면.

 
트라우마 관련 활동가들의 2차 트라우마에 대한 치유프로그램과 신체이완을 위한 훈련프로그램인 아우토겐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아우토겐 프로그램은 신체 이완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대부분 몸 자체가 긴장되어 있고 편히 쉬지 못하기 때문에 신체를 이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2차 트라우마는 ‘대리 트라우마’라고도 하는데 트라우마 피해자를 지원하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본인이 피해를 당한 것처럼 세상에 대해 위협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경계하게 되거나 아니면 피해자들의 후유증을 본인이 그대로 겪기도 한다. 그걸 대리 트라우마라고 한다.

 
활동가들이 일하는 단체들 또한 활동가들이 겪는 2차 트라우마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물론 알고 계시겠지만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추긴 어려운 것 같다. 너무 바쁘고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활동가-우리 센터로 치면 치료진인데 스태프의 심리적인 건강과 안정은 센터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나 또한 활동가로 일하거나 초보시절에는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절감한다. 시민단체들의 단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가장 중시했던 것도 활동가들이 같이 일하면서 소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우리 센터든 어디든 동료슈퍼비전-즉각적으로 동료한테 위안이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체계가 그 단체의 구조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할 것이다.(일다, 2012년 4월 5일)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6013§ion=sc1§ion2=일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