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교육>2014년 겨울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약한 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공동체
트라우마,  마음 상처와 치유

 

글. 최현정

신체, 정체성, 공동체에 압도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건
우리는 스트레스라는 말을 잘 씁니다. 일상에서 ‘스트레스 받는 일’이 많아서일까요? 스트레스란 내적 균형을 동요시키는 작용을 하는 ‘외부에서 가해진 힘’을 뜻합니다. 일상에 닥치는 스트레스 사건은 우리의 몸과 마음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크고 작은 스트레스 사건에 대응해 나가면서 일상을 유지합니다. 어떤 스트레스는 견딜 만한 수준입니다. 일상에서 부딪치는 작은 사건과 갈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스트레스는 오래도록 쌓이면서 영향을 미칩니다. 마치 오래 입은 옷이 서서히 닳듯, 이러한 만성 스트레스는 누적된 영향을 줍니다. 만성적인 신체 질환, 경제적 어려움, 친밀한 사람 사이의 갈등과 이별, 불합리한 차별 대우 등은 만성 스트레스에 포함됩니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분명 고통스럽지만 그 영향이 잘 보이지 않고, 따라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편, 어떠한 스트레스는 매우 날카롭고 강력해 우리의 몸과 마음 체계를 뒤흔드는 압도적인 영향 을 미칩니다. 이러한 충격적인 사건을 일컬어 ‘트라우마’라고 합니다. 집, 학교, 직장처럼 일상에서 벌어지는 신체적인 학대나 성폭력,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정서적인 학대와 방임, 분쟁 및 갈등 지역에서 벌어지는 전투 상황, 고문과 박해, 자연재해, 생명을 위협하는 큰 사고, 급작스럽고 충격적인 사별은 잠재적으로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스트레스 사건을 트라우마라고 할지는 사태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우리의 신체, 정체성, 공동체에 압도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건을 트라우마라고 정의하겠습니다.

위험에 대비하는 작동 체제
사람은 스트레스와 마찬가지로 트라우마 수준의 스트레스도 대응해 나가면서 일상을 유지하려고 애씁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통에 빠졌을 때 자신의 삶을 복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만 트라우마는 우리의 대응 체계 자체를 압도하는 사건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스트레스에 비해 몸과 마음을 동요시키는 강도가 더 크고 따라서 복구하는 과정 속에서 더 많은 관심과 돌봄을 필요로 합니다.
강력한 스트레스는 체내의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축 회로의 만성 활성화를 야기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을 방출합니다. 스트레스 호르몬, 자율신경계, 기억을 관장하는 뇌 기능은 서로 영향을 미칩니다. 트라우마는 신체가 위험에 대비할 수 있도록 경보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경보 반응에 대비하여 신체를 스스로 보호하는 체계를 작동시킵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자율신경계는 위험에 대비하여 신체를 지킬 수 있도록 활약합니다. 위험이 감지되었을 때 위험에 맞서 싸우거나 잘 도망치도록 신체를 활성화하거나, 신체의 상해를 최소화하도록 운동 마비와 신경계의 차단 반응을 유발하여 우리 몸을 보호합니다. 트라우마 상황에서 심장박동과 호흡이 빨라지는 것은 대근육을 활성화해 싸우거나 도망치는 데 몸을 준비시키는 반응으로, 이때 신체에 강한 에너지가 작동하면서 강도 높은 긴장이 발생하고, 상대적으로 뇌와 소화기에는 에너지가 집중되지 못하므로 어지럼증, 소화기 문제가 유발될 수 있습니 다. 만약에 신체 기관에 심각한 상해나 침범을 당할 위험이 임박한 경우, 상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마비 반응은 각성 수준을 떨어뜨리고 감각을 둔감하게 만들며 의식을 잃게 하기도 합니다. 이는 모두 신체의 생존 가능성을 최대화하고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탑재된 생리적 방어 반응에 해당합니다. 트라우마를 겪은 이후, 신체는 위험의 작은 단서에도 바로 경보 반응을 촉발하여 경계 태세를 유지합니다. 트라우마 경험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면, 이러한 방어 반응이 만성적으로 지속되어 몸과 마음의 기능을 쇠약하게 할 수 있습니다. 주변 환경이 더 이상 안전하게 느껴지지 못해 삶의 많은 영역을 제한당하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에 대한 불신을 이어 갈 우려가 큽니다. 어떠한 경우에는 트라우 마라는 원인을 추적하지 못하고, 개인의 몸과 정신에 이상이 생겼다고 오해하여 사회적으로 위축되고 고립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조각난 고통스러운 기억
트라우마는 기억을 관장하는 뇌 기능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뇌 부위 중 해마라고 불리는 곳은 우리에게 일어난 사건에 맥락을 부여하여 잘 정리된 자서전 기억(자기 일생에서 일어난 특정 사건이나 사실 관계에 관한 기억의 총체)을 형성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특히 편도체라는 구조에서 활성화된 정서 기억을 잘 정리해 전체 기억 체계에 통합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트라우마가 발생했을 때에는 스트레스 호르몬의 과잉으로 인해 해마의 기능이 저하됩니다. 따라서 편도체의 정서 기억이 자서전 기억과 잘 어우러지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해마를 매개로 저장되지 못한 기억은 고등 뇌 기능에 의해 통제를 받지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떠올라 낮에는 원치 않는 기억으로, 밤에는 악몽으로 마음속에 침투합니다.
조각난 고통스러운 기억은 계속해서 마음속에 두려움, 수치심, 죄책감, 분노를 끌어들이고, 자아상을 왜곡하며,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가에 관한 정체성에 혼란을 주고, 관계와 행동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 때문에 마치 과거의 트라우마가 현재에도 계속되는 것만 같은 고통을 겪게 됩니다. 많은 트라우마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에게 트라우마가 늘 현재 진행형인 것은 이들의 트라우마 기억이 제대로 이해되지도, 정리되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트라우마로부터 회복되기 위해서는 경보 반응이 완화되고, 신경계의 안정화가 달성되며, 해마가 다시 제 기능을 되찾아서 조각난 채 괴롭히는 트라우마 기억을 이해하고, 마치 여느 기억처럼 자서전 기억에 통합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기회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걸까요? 아니면 이러한 기회는 특정 전문가들만 제공할 수 있는 걸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트라우마의 속성과 영향력에 대해서 더 널리, 많이 알려져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트라우마 회복의 기회는 모두에게 주어져야 하고, 또 우리 모두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지속되는 고통에 괴로워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겪어도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회복 과정을 잘 거쳐 갑니다.
 
트라우마의 자연스러운 회복 과정 - 두려움과 상실의 공감과 이해
조각난 고통스러운 기억 그렇다면 트라우마의 자연스러운 회복 과정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우선 자율 신경계가 다시 안정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세상은 그래도 안전하다는 확신을 생존자와 유가족이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트라우마가 발생 한 만큼 위험한 상황이었고 많은 상실이 있었지만, 여전히 세상은 정의로우며, 대 부분의 사람들이 피해를 복구하기를 원하고 피해자를 지켜 준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면, 세상을 더 이상 위험하게 보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생존자는 점차 안 전감을 되살리면서 일상으로 되돌아가고, 과거의 안전했던 세상을 되찾아 갈 수 있게 됩니다. 우리 공동체가 만약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두려움과 상실 감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면, 생존자는 더 이상 경보 반응의 괴로움 속에 홀 로 갇히지 않아도 되고, 더 자유롭게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습니다. 해마의 기능을 복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많은 경우 트라우마의 이야기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트라우마의 경험을 ‘무언의 공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생존자들은, 트라우마의 이야기를 말하고 싶어 합니다. 말함으로써, 스스로를 이해하고, 또한 다시 공동체로부터 이해받을 수 있는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트라우마의 이야기를 말로 풀어내는 과정은 해마의 기능을 복구하여 트라우마 기억이 정리되고 통합될 수 있게 도우며 따라서 트라우마의 종료를 촉진합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트라우마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왜 어떤 생존자들은 더 이상 말하기를 거부하게 되는 걸까요? 왜 ‘다 시 들춰내기 싫다’고 말하고, ‘이제 그만 덮고 싶다’고 말할까요? 생존자들의 이야 기를 들어 보면, 트라우마 이후 타인에게 자신의 트라우마 경험을 말하려고 무수히 시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단 한 번일지라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었고, 또 이야기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들춰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야기했을 때 상처받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트라우마 경험을 이야기했을 때 ‘이제 그만 잊어라’, ‘덮어 두자’,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말을 들 었을 것입니다. 혹은 ‘그건 네 잘못이었다’, ‘네가 문제이다’, ‘네 인생은 이제 끝났 다’라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혹은 ‘그때 이렇게 했어야지’, ‘너는 그것 하나 대응 못 하냐’, ‘너는 너무 약해 빠졌다’는 식의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말했던 사람들을 ‘방관자’라고 부릅니다.

트라우마는 이야기되어야 한다
트라우마가 야기하는 공포와 고통의 강도는 강력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방관자의 편에 서기를 선택합니다. 방관자가 되면 트라우마의 강도 높은 고통을 면제받을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방관함으로써 나 자신은 그런 일을 겪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지킬 수 있고, 내 세상만큼은 안전하고, 나만큼은 존엄한 존재라는 믿음을 붙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방관자가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를 장악하는 트라우마의 고통은 더욱더 지속될 뿐입니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라고 했을 때, 방관자 역시 트라우마라는 고통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트라우마는 이야기되어야 합니다. 어느 하나도 외면되거나 은폐당하지 않고,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하는 진실이 밝혀져야 합니다. 그리고 생존자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가를 경청해야 합니다. 그 이후에 진정한 복구가 시작됩니다. 생존자가 안정을 되찾고, 사람들 사이에서 트라우마를 이해받는 것이 곧 정의입니다. 모두가 방관자가 된 채로, 특정한 가해자를 지목하여 그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 정의의 전부는 아닙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방관자가 되지 않고자 노력하는 것이 곧 정의입니다. 약한 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공동체, 약한 자가 경험한 진실이 경청되는 공동체, 그런 공간에 곧 정의가 있습니다. 약한 자의 목소리가 들리려면, 우리 모두가 약해질 수 있음을 인식하고 또 인정해야 합니다. 트라우마 앞에서는 어떤 인간도 나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실을 인식한 겸허함으로, 약해져 본 사람의 경험을 존중할 수 있습니다. 절대적인 강자가 존재하며 그 강자가 되기 위해서 약함을 부인하는 사회에서 트라우마의 종결이란 불가능합니다. 진실을 인정받은 생존자에게서는 지혜로운 목소리가 울립니다. 아마도 사람이 얼마나 약할 수 있는지를 경험했고, 사람들이 함께 서로의 이야기를 존중할 때 얼마나 강할 수 있는지를 경험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두려움 앞에서도 인내심을 발휘하여 생존자의 이야기를 온전히 함께 듣고 끝까지 함께 슬퍼할 때, 우리 에게도 지혜의 목소리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 이후의 사회를 재건하기 위한 새로운 가치와 방향은 바로 그 목소리 안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끝까지 함께 슬퍼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약해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우리 공동체가 약함의 의미를 재정의하고 서로 보듬어 주기를 바라봅니다.

 

 

 최현정 connect@traumahealingcenter.org
임상심리학을 공부하고 심리지원 수련을 받았습니다. 동료와 뜻을 모아 트라우마 치유 센터 ‘사람마음’을 만들었고 그곳에서 트라우마 생존자들의 회복을 위한 심리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트라우마 회복을 촉진하는 민주적인 체계와 공동체의 힘을 증진하는 일에 관심이 많아 관련된 글을 쓰고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