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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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팽목항 도보행진을 보며

수정: 2015.02.24 19:59
등록: 2015.02.24 18:04
 

행진마치고 눈물 흘리는 세월호 실종자가족

세월호 4·16 가족협의회 도보행진단이 14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도착, 한 실종자 가족이 행진을 마치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도보행진단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며 안산지역을 출발해 전남 진도 팽목항까지 19박 20일동안 릴레이 도보행진을 펼쳤다. 연합뉴스

 

 

세월호 도보 행진단이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450㎞를 20여일 걸었다. 팽목항에 도달한 지난 14일은 세월호 사건 발생 후 처음 맞는 설 직전이었다. 이들은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 9명을 찾기 위해 선체의 온전한 인양과 여전히 더디기만 한 진실 규명을 외친다. 목 쉰 외침이 귀에 생생하다.

 

우리는 죽음을 상상하고 살지 않는다. 하루를 살아내기에도 벅찬데 죽음을 생각하면 뭐 좋을 게 있을까. 하지만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는 죽음에 대한 겸허한 마음마저 잃어버린 건 아닐까.

 

충격적인 사별이라는 트라우마는 우리가 머리로만 상상하는 이별과는 그 강도가 다르다. 사별 트라우마에는 몸뚱이만 남은 물리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마주하는 충격이 가해지고, 소중한 사람이 사라져 삶의 의미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극단적 상실이 닥쳐온다. 인간이란 살아온 역사도 희망하던 미래도 언제든 부차적인 것이 될 수 있는 존재, 끊임없이 먹고 숨을 쉬어야만 살 수 있는 존재 그 이상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또한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다 해도 세상 사람들은 그다지 상관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아버렸다.

 

사별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고통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죽음에 대한 터부가 가하는 고통이다. 죽음이 갑작스러운 만큼, 그 죽음에 대해서 주변 사람들이 허투루 내뱉은 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어지는 생채기를 낸다. 주변 사람들은 오직 생각으로 상상한 죽음만을 떠올리기 때문에, 위로로 건넨 말이라 해도 비수가 될 수 있다. 심지어 타인의 죽음에 이러쿵저러쿵 판단하는 말이 난무한다. 충격적인 죽음은 유가족에게는 온 몸으로 겪어내야 하는 고통인데, 누군가에게는 흥미롭거나 질색하는 이야깃거리다.

 

사랑하는 죽은 이도, 돌아오지 않는 이도,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도 모두 자신을 버렸다.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 느낌이란 단지 생각으로 떠오르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사별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과 심리치료를 진행할 때마다 나는 내장 깊은 곳은 차갑게 식음을, 목구멍에는 불타는 메임을 느낀다. 유가족들, 실종자 가족들, 그리고 생존자들이 겪는 슬픔은, 주변 사람들이 그저 상상으로 생각하는 슬픔과 다르다. 우리는 그걸 감히 ‘생각’할 수 없다. 다행히 지난해 4월 우리는 그 슬픔을 온 몸으로 느꼈다. 가라앉는 선박을 바라보며 느낀 충격, 죄책감, 무력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주변 이들의 느낌은 오래 가지 않는다.

 

 

 

팽목항 도착한 세월호 행진단 

세월호 4·16 가족협의회 도보행진단이 14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도착하고 있다. 도보행진단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며 19박 20일동안 안산지역을 출발해 전남 진도 팽목항까지 릴레이 도보행진을 펼쳤다. 연합뉴스

 

 

지난해 4월에 느꼈던 슬픔, 죄책감, 무력감을 잘 붙들어 매야 한다. 사람은 서로가 없이는 의미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별 앞에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죄책감을 느낀다. 그래서 죄책감은 지극히 소중한 감정이다. 죄책감은 신중함과 겸허함으로 사별한 자들을 대하게 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을 다잡아 주며, 우리가 만들어낸 잘못을 수정하도록 이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죄책감을 겸허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 고통에 대한 우리의 인내심이 이토록 얇았던가. 죽음을 목격하면서 느낀 충격과 죄책감을 자꾸 부인하려 한다.

 

유가족이 “왜”라고 물으면 사회는 최선을 다해 답변을 내 놓아야 한다. 대답한다는 것은 죽음을 맞은 자에 대한 예의이고, 다음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제일 좋은 출발점이다. 세월호 유가족 증언집 ‘금요일엔 돌아오렴’(창비 발행)을 보면, 과거 서해 페리호 사고 당시 의경으로 유가족들과 대치했던 고 임세희 학생의 아버지 임종호씨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유가족들에게 맞으면서 슬픔을 느꼈던 그는 21년 후 세월호 사고의 유가족이 되었다. 허탈한 모순이다. 바로잡기 위한 대답이 참으로 절실하다.

 

그리고 주변 사람으로서 답변을 고민해 본다. 설 연휴가 끝난 날 고향 다녀와 집에 잘 도착했다는 가족의 전화 한 통이 기다려지는 절절한 마음을 느끼다, 지난해 4월 영영 전화 한 통을 받지 못한 자들의 허망함을 곁에 둬 본다. 그들의 발걸음은 참 현명하고 지긋하다. 보상이라는 함정을 피해, 회복과 복구의 길로 들어선 그들의 지혜와 의지를 존경한다. 그 발걸음에 미안하다는 말 뿐이 나오지 않는다. 지금 그 발걸음이 훗날 내 자식의 목숨을 분명 살려줄 터이니.

 

 

최현정 트라우마치유센터 사람마음 대표